코로나19 팬데믹은 백신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원래 10년 이상 걸리던 백신 개발과 승인이 불과 1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그 중심엔 바로 ‘긴급사용승인(EUA)’이라는 제도가 있다. 이는 공중보건 비상상황에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임상 3상이 완료되기 전에 조건부로 백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전 세계 보건당국이 사용하는 이 절차는, 안전성과 효과성을 확보하면서도 시간과 생명을 절약하는 타협점이라 할 수 있다.
전염병 위기와 백신의 속도전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포가 출발점
질병 확산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에 도달하면, 보건당국은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이 조치는 백신 개발과 규제 절차를 단축하는 법적 기반이 된다. 이후 백신 후보물질은 빠르게 임상시험 단계에 진입할 수 있다. 특히 임상 각 단계가 병렬적으로 진행되면서 전체 개발 속도가 크게 단축된다. 비상사태 하에서는 일부 행정절차도 간소화된다. 그 결과 긴급사용승인을 위한 기반이 마련된다.
기존 백신 플랫폼 기술의 활용
완전히 새로운 백신이 아닌, 기존의 플랫폼을 활용한 백신은 개발 속도가 훨씬 빠르다. 예를 들어 mRNA 백신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암 치료 연구에 활용되던 기술이다. 덕분에 플랫폼 기술은 임상 1상 자료 축적이 이미 되어 있어 빠른 전개가 가능하다. 이는 긴급사용승인 조건 중 하나인 ‘사전 안전성 확보’에도 유리하다. 기존 자료를 토대로 신속한 심사가 가능하다. 과거 데이터가 새로운 질병에 대한 백신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백신 부족과 대중의 요구
전염병 확산 초기, 사람들은 불안감 속에서 백신을 기다린다. 이때 정부는 물리적으로 가능한 가장 빠른 시점에 백신을 공급해야 하는 압박을 받는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보건당국도 유연한 판단을 내린다. 긴급사용승인은 이러한 절박한 수요와 공급의 타협점이다. 대중의 요구가 절차를 단축시키는 촉진제가 되기도 한다. 물론 이때도 최소한의 안전성과 효능은 입증돼야 한다.
구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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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조건 |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포 |
기술 기반 | mRNA 등 기존 플랫폼 기술 활용 |
수요 요인 | 백신 부족, 대중 요구 증가 |
긴급사용승인의 기준과 조건
과학적 근거 확보
긴급사용승인은 무조건적인 허가가 아니다.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백신이 특정 질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예비 증거’가 있어야 한다. 이는 보통 임상 1상과 2상에서 얻은 데이터에 기반한다. 특히, 안전성과 면역반응 유도 여부가 관건이다. 효과가 100%가 아니더라도, ‘이익이 위험을 능가’하면 허가가 가능하다.
대체 수단의 부재
EUA는 대체 치료 수단이 없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같은 질병을 막는 백신이나 치료제가 이미 승인돼 있으면, 긴급사용승인의 필요성이 떨어진다. 코로나19 초기엔 백신이 없었기 때문에 EUA가 가능했지만, 이후에는 절차가 더 엄격해졌다. 이 기준은 미국 FDA뿐 아니라 WHO, EMA 등 글로벌 기관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대체제가 없다는 것은 곧 백신의 ‘상대적 가치’를 의미한다. 효과가 일정 수준 이상이면 승인될 수 있다.
이익과 위험의 균형 판단
긴급사용승인의 핵심은 ‘위험보다 이익이 크냐’는 판단이다. 일부 부작용이 존재하더라도, 대규모 감염으로 인한 사망률보다 낮으면 허용된다. 이 부분은 전문가 자문단의 심의를 통해 결정된다. 위험 대비 이익의 비율이 객관적으로 평가된다. 백신이 인구 집단에 미치는 영향도 중요한 요소다. 결국 공중보건적 관점에서 ‘집단 이득’이 더 크다고 판단되면 승인된다.
기준 항목 | 세부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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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증거 | 면역반응, 안전성, 임상 결과 |
대체 수단 | 존재하지 않을 경우만 승인 |
이익/위험 평가 | 전문가 검토를 통해 최종 판단 |
백신 개발 단계와 EUA의 위치
일반 백신의 개발 절차
보통 백신은 ▲전임상(동물실험) → ▲임상 1상(소규모 안전성) → ▲2상(면역반응) → ▲3상(대규모 효과성) → ▲허가 심사 → ▲시판 순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은 평균 10년 이상 소요된다. 그러나 팬데믹 상황에서는 시간 단축이 필수다. 그래서 EUA는 임상 3상이 완료되기 전, 조건부로 사용을 허가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가교’ 역할을 한다. 모든 절차가 끝나기 전에 실제 사용을 허용하는 셈이다.
임상 3상 중간결과로도 판단
긴급사용승인은 임상 3상 완료 전이라도 중간 결과만으로 판단 가능하다. 중간분석 결과에서 효과가 명확하다면, 규제기관은 빠르게 판단을 내린다. 단, 이 경우 ‘조건부 허가’로 사용된다. 최종 허가는 여전히 전체 임상 종료 후 내려진다. 긴급승인 이후에도 계속 추적 조사가 이뤄진다. 이로써 안전성을 확인하는 이중 장치가 작동한다.
EUA 승인 이후의 사후조치
승인 이후에도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이루어진다. 백신 부작용, 예방효과, 인구집단별 반응 등 다양한 자료가 수집된다. 필요 시 승인을 철회할 수도 있다. 이는 안전망의 일환이다. 미국의 경우 VAERS(백신 이상반응 보고시스템), 한국의 경우 코로나19 예방접종피해조사단이 그 역할을 한다. EUA는 끝이 아닌, 과정 중 하나다.
단계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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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개발 | 10년 이상 소요, 단계별 승인 |
EUA 절차 | 임상 3상 전 중간 결과로 승인 |
사후관리 | 모니터링·데이터 수집 필수 |
주요 국가별 긴급사용승인 사례
미국 FDA의 코로나19 백신 EUA
2020년 12월, 화이자 백신이 미국에서 처음 EUA를 받았다. FDA는 약 4만명 규모의 임상 3상 중간 데이터를 바탕으로 승인 결정을 내렸다. 승인 당시 부작용 사례는 경미했으며, 효과는 90% 이상으로 나타났다. 이후 모더나, 얀센 백신이 연이어 EUA를 받았다. 단, 조건은 명확했다. 예컨대 16세 이상만 접종 허용 등의 제한이 있었다.
한국 식약처의 조건부 허가
한국은 ‘특례수입’과 ‘조건부 품목허가’ 두 가지로 대응했다.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 백신은 국내 임상이 아닌 외국 데이터를 기반으로 승인됐다. 식약처는 전문가 자문단의 검토를 거쳐 사용을 승인했다. 단, 국내 데이터 확보를 위한 사후조사를 병행했다. 이는 EUA와 유사한 개념으로, ‘임시 허가’라고도 불렸다. 한국은 백신 안전성 확보를 위해 승인 후 감시체계를 강화했다.
WHO의 긴급사용목록(EUL)
세계보건기구(WHO)는 ‘긴급사용목록(EUL)’을 통해 백신을 글로벌 사용 대상으로 승인한다. 주로 저소득 국가의 신속한 도입을 돕기 위한 제도다. WHO는 과학적 기준에 따라 평가하고, 각국의 규제기관이 이를 참고한다. EUL 등록은 COVAX 공급 조건이 되기도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아스트라제네카, 시노팜 백신 등이 WHO EUL에 포함됐다. 이는 국제 백신 접근성 확대의 핵심 수단이다.
국가/기관 | 절차 명칭 | 특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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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FDA | EUA | 임상 중간결과 기반, 조건부 승인 |
한국 식약처 | 특례수입/조건부 품목허가 | 외국자료 기반, 전문가 검토 병행 |
WHO | EUL | 저소득국가 공급 전제, 국제 인증 |
긴급사용승인에 대한 우려와 반론
안전성 부족에 대한 불안감
가장 큰 우려는 ‘너무 빨리 나왔다’는 점이다. 일부 국민은 백신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는 백신 접종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실제 EUA 백신은 수천 명 이상의 임상 데이터를 확보한 상태였다. 규제기관 역시 신속하지만 철저한 검토를 거쳤다. 통상 승인보다 느슨하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정치적 개입 가능성
특히 대선이나 국제행사 등이 있는 경우, 정부가 과도하게 백신 승인에 개입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일부 국가는 정치 일정에 맞춰 승인 발표를 하기도 했다. 이는 과학적 절차에 대한 신뢰를 저해한다. 하지만 대부분 국가는 독립적인 자문단을 운영하고 있다. 과학 중심의 판단이 이뤄지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 정치 개입 방지 장치가 강화된 상태다.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 우려
백신 접종 후 발생한 이상반응은 사회적 이슈가 되기 쉽다. 이는 긴급승인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이상반응 보고 시스템을 정비하고, 피해보상 제도를 마련했다. 예를 들어, 백신 피해 보상위원회를 설치해 객관적 검토가 이뤄지도록 했다. 백신 접종은 집단의 이익과 개인의 위험 간 균형을 요하는 결정이다. 사전 설명과 동의가 핵심이다.
우려 | 반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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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성 부족 | 수천 명 대상 임상자료 확보 |
정치 개입 | 독립적 자문단·제도 장치 |
부작용 불신 | 이상반응 보고·보상 시스템 구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