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에도 낙인이 있다.’ 에이즈, 나병, 코로나19까지—이 질병들은 단지 증상만이 아니라, 사회적 편견이라는 무게도 함께 짊어져야 했다. 이름 하나로 개인의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린 사례는 인류사에서 무수히 반복되어 왔다. 질병의 이름이 잘못 붙여졌을 때, 환자들은 병이 아닌 ‘사람’ 때문에 더 고통받는다. 이런 역사 속 낙인은 단순한 언어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와 권력의 반영이었다.
에이즈와 ‘동성애자 병’이라는 낙인
초기 보도와 동성애자 혐오 확산
1980년대 초, 에이즈는 처음 ‘동성애자 면역결핍증후군’(GRID)으로 불리며 소개됐다. 이 명칭은 동성애자에 대한 낙인을 강화시켰고, 감염자는 곧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이라는 편견이 씌워졌다. 미국 언론과 정부의 대응이 늦었던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성소수자 혐오가 기반이었다.
치료보다 격리, 보호보다 혐오
에이즈 감염자는 병원조차 거부당하거나 강제로 격리되기도 했다. 일부 국가에선 감염 사실을 이유로 해고나 입국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불결하다’는 인식은 의료적 접근을 막았고, 환자의 인권은 뒷전이었다.
이름이 바뀌고 나서야 달라진 인식
이후 세계보건기구(WHO)는 질병명을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으로 공식화했다. 이름에서 특정 집단을 뺀 뒤에야 문제의 본질인 바이러스(HIV)와 치료 접근이 본격화됐다. 낙인의 벽을 허무는 데는 병명을 바꾸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구분 | 초기 명칭 | 부작용 | 개선 후 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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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명 | GRID (Gay-Related Immune Deficiency) | 동성애자 낙인화 | AIDS로 변경, 인권 개선 |
주요 피해 | 사회적 격리, 혐오 | 의료접근 차단 | 치료와 예방 접근 확대 |
나병과 수세기 동안의 사회적 격리
‘문둥병’이라는 단어의 폭력성
나병은 오랫동안 ‘문둥병’이라 불리며, 환자들은 공동체에서 배제되었다. 성경과 종교문화에서 ‘부정함’의 상징이 된 나병은 죄와 연관된 병으로 여겨졌다. 실제 감염성은 낮았지만, 그 인식은 매우 공포스러웠다.
격리정책의 정당화 수단
19세기 후반부터 많은 나라에서 나병 환자들을 격리시설로 이주시켰다. 우리나라 소록도 역시 그 상징적 공간이다. 병보다는 ‘나병환자’라는 존재 자체가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명칭 변경이 낙인을 줄였다
오늘날에는 ‘한센병’이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사용된다. 19세기 발견자인 한센 박사의 이름을 딴 이 명칭은 병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줄이고 있다. 명칭 변경 이후, 인권 보호와 사회 복귀를 위한 제도들이 마련되었다.
구분 | 이전 명칭 | 부작용 | 현재 명칭 | 개선 효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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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명 | 문둥병 | 사회적 배제 | 한센병 | 인식 개선, 인권 신장 |
대응 | 강제 격리 | 공동체와 단절 | 사회 통합 중심 | 인권 보장 확대 |
코로나19와 ‘우한 바이러스’라는 정치적 낙인
초기 명칭이 불러온 인종차별
코로나19 발생 초기, 일부 언론과 정치인은 ‘우한 바이러스’ 또는 ‘중국 바이러스’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이는 곧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 범죄 증가로 이어졌다. 미국, 유럽 등에서 아시아인을 향한 폭행 사건이 다수 보고됐다.
WHO의 빠른 명칭 개입
WHO는 이를 막기 위해 ‘COVID-19’라는 중립적 명칭을 빠르게 확산시켰다. COVID-19는 ‘Coronavirus Disease 2019’의 줄임말로, 지역명을 배제했다. 명칭은 곧 혐오의 방향을 바꾸는 열쇠였다.
명칭과 함께 신뢰도도 변화
WHO가 권위 있게 질병 명칭을 정리한 뒤, 공중보건 정보의 신뢰도도 향상됐다. 또한 미디어의 용어 선택이 사회 분위기 변화에 영향을 주었다. 명칭의 중립성은 과학적 접근을 돕는 핵심 요소다.
구분 | 명칭 | 사회적 영향 | 조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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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 우한 바이러스 | 인종차별, 혐오범죄 | 명칭 금지 권고 |
변경 | COVID-19 | 중립적 접근 가능 | 과학적 소통 강화 |
‘돼지독감’과 동물에 대한 낙인
명칭이 촉발한 소비자 불안
2009년 유행한 H1N1 바이러스는 ‘돼지독감’이라 불리며 세계적으로 큰 공포를 일으켰다. 이 명칭은 돼지고기에 대한 소비를 급감시키고, 축산업계에 큰 경제적 타격을 입혔다. 감염 경로와는 무관한 오해가 확산됐다.
세계식량기구와 WHO의 명칭 수습
당시 FAO와 WHO는 공동 성명을 통해 ‘돼지고기를 먹어도 감염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이후 ‘H1N1 인플루엔자’로 명칭을 바꾸며 불필요한 공포를 진정시키려 했다. 병명 하나가 산업계 전체를 뒤흔든 대표적 사례였다.
낙인 없는 명명 필요성 강조
이 사건 이후 국제기구들은 병명 작명 시 지역, 동물, 특정 집단을 지칭하지 않도록 원칙을 세웠다. 명칭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도구임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구분 | 초기 명칭 | 부작용 | 개선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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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명 | 돼지독감 | 축산업 타격, 소비감소 | H1N1 인플루엔자 |
결과 | 오해 확산 | 경제 손실 | 과학 기반 정보 전달 |
병명과 인권은 맞닿아 있다
병명은 환자의 존엄성과 직결
질병 명칭은 단순한 레이블이 아니다. 그것은 환자의 정체성, 사회적 이미지, 나아가 법적 권리에도 영향을 미친다. 차별적 병명은 치료 기회를 막고, 사회적 고립을 낳는다.
병명이 과학적이어야 하는 이유
질병 명명은 감정이 아닌, 과학과 공중보건에 기반해야 한다. 명확한 기준 없이 붙여진 병명은 혼란과 불신을 낳는다. 세계보건기구는 병명 명명 시 정치적·지리적 편향을 제거하는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언어는 치료다
정확하고 중립적인 명칭은 환자에게 보호막이 된다. 언어 하나가 오해를 막고, 인식을 바꾸며, 더 나은 치료 환경을 만든다. 말은 때론 약보다 강한 힘을 갖는다.
요소 | 영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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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명 | 환자의 인권, 사회 인식 |
낙인 | 치료 지연, 사회적 고립 |
명명 원칙 | 비차별성, 과학 기반, 중립성 강조 |
앞으로의 병명은 어떻게 정해야 할까
WHO의 새 원칙
WHO는 2015년부터 질병 이름에 사람, 지역, 동물명 등을 포함하지 않도록 하는 원칙을 도입했다. 이는 낙인을 방지하고, 정보 전달의 명확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원숭이두창(Monkeypox)’도 최근 ‘Mpox’로 명칭을 바꾸었다.
의료계와 언론의 책임
의료진뿐 아니라 언론도 병명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극적 용어나 단정적 표현은 낙인을 조장할 수 있다. 병명을 단순화하거나 오역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대중 인식 개선도 함께
정확한 명칭 사용만큼 중요한 건, 대중의 인식을 개선하는 일이다. 학교 교육과 미디어 캠페인을 통해 낙인 없는 언어 사용이 확산되어야 한다. 병명은 우리가 함께 만드는 문화다.
항목 | WHO 병명 원칙 적용 예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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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이전 |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신종플루 |
적용 이후 | COVID-19, Mpox |
기대 효과 | 차별 해소, 신속한 정보 전달 가능 |